Busby 감독의 유러피안 컵 우승을 회상하며.. by Homme

원문: from goal.com


맨유가 1967-68년도에 이룬 유러피안 컵 우승이 축구 팬들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울려대는 이유는 그들이 유럽에서 우승을 차지한 첫 잉글랜드 팀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당시 맨유의 감독인 Matt Busby 감독과 맨유의 팬들이 그로부터 10년전 겪어야 했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1958년 2월에 벌어진 뭰헨 참사에서 10년이 지난 후 이루어진 이 업적은 맨유 입장에서는 굉장히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Busby의 'Babes'들 중에서 8명이 8강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잉글랜드로 복귀하던 과정에서 박살난 비행기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맨유의 유럽 진출은 잉글랜드 FA로부터 상당히 심한 반대에 부딪혔었는데 맨유의 Busby 감독은 1956년부터 이를 무릅쓰고 팀을 유러피안 컵에 출전시키고 있었다. 그는 이를 통해 그의 어린 선수들이 더욱 더 발전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맨유의 유러피안 컵 참가는 FA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라는 잉글랜드 FA의 입장에 대해 스코트랜드 출신인 그는 "이 대회의 권위만으로도 이 대회는 충분히 참가할 가치가 있습니다. 피하면 안되는 도전입니다."라고 반박하면서 꾸준히 출전을 강행하면서 다른 잉글랜드 팀들의 모범이 되었지만 58년도의 충격적인 사고로 그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 또한 사고를 통해 생사를 넘나들면서 몇 주를 보내야 했지만 몸이 회복한 뒤에도 그의 죄책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의 선택에 대해 그는 정말로 자신이 옳았는지에 대해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당시 목숨을 잃은 그의 선수들과 코치 등 구단 관계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법은 올드 트래포드로 유러피안 컵을 가져오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판단하였고 당시 생존자였던 Bill Foulkes와 Bobby Charlton을 중심으로 다시 팀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1965-66년 시즌에 맨유는 전시즌 국내 리그를 우승하면서 유러피안 컵에 진출할 자격을 얻었지만 준결승 전에서 Partizan Belgrade한테 종합 2-1로 패하고 말았다. 1966-67년 다시 한번 리그를 우승한 맨유는 다시 한번 유러피안 컵 진출권을 얻었다.


(역주: 지금의 챔스보다는 훨씬 팀 수도 적고, 일단 잉글랜드 리그가 상당히 변방 취급받았던것 같네요 읽다 보니..) Malta에서 온 Hibernians를 4-0으로 손쉽게 꺾고 2차전에서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여유 있게 2라운드로 진출한 (역주: 조별 예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맨유는 Sarajevo를 만났다. 전년도 챔피언 셀틱이 1라운드에서 Dinamo Kiev한테 3-2로 패배하는 바람에 맨유는 영국 팀들 중에 유일하게 유러피안 컵에 남아있는 팀이 되었다. 맨유는 보스니아로 원정을 떠나서 당시 소련 소속의 유고슬라비아의 챔피언과 맞닥뜨려서 0-0 무승부를 얻어왔다. 그리고 홈으로 그들을 불러들여 베스트의 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8강전에서 만난 상대는 폴란드 챔피언인 Gornik Zabrze였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Stefan Florenski가 자살골을 넣으면서 리드를 잡았고 당시 18살로 프로에서 첫 시즌을 맞이하고 있던 Brian Kidd의 추가골이 이어지면서 2-0으로 승리하는데 성공하였다. 2차전은 Stadion Slaski에서 105,000명의 팬들 앞에서 치뤄졌고 원정티이었던 맨유한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결국 Lubanski한테 골을 먹으면서 1-0으로 패했지만 종합 2-1로 4강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4강전에서 만난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그들은 앞선 1957년에 4강전에서 당시 Busby Babes의 앞길을 가로 막았던 적이 있는 팀이었다. 그로부터 11년 뒤에 치러진 이 날 4강전,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베스트가 골을 넣으면서 1-0으로 간신히 승리하였다. 


하지만 베르나뷰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전반전이 끝난 뒤 맨유는 3-1로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역시 6번이나 우승 경험이 있는 팀한테는 안되는 것이었을까. 홈팀 선수들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고, 팬들은 이미 잔치 분위기였다. Busby 감독은 이에 맞서서 과감하게 모든 선수들한테 공격에 가담할 것을 지시했고 Sadler가 73분에 2번째 골을 넣으면서 분위기를 뒤집는데 성공하였다. 5분 뒤 베스트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화려한 드리블을 선보이면서 크로스를 올렸고 Sadler의 파트너 센터백인 Foulkes가 마무리를 지으면서 종합 4-3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꺾는데 성공하였다.


결승전은 5월 29일, 웸블리에서 벤피카를 상대로 벌어졌다. 1961년에 레알 마드리드의 독주를 막았던 팀이었던 당시 벤피카는 62년에도 연이어 우승한 뒤 63년에는 결승전에서 AC 밀란한테 패하면서 3연속 우승을 놓친 아주 강한 팀이었다. 1965년도에도 결승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었고, 그들의 업적과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힘은 그 유명한 아우제비오였다. 그 해에도 아우제비오는 모든 수비수들의 악몽으로 떠오르면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맨유는 자신들의 최다득점자인 데니스 로를 부상으로 잃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뭰헨 사고의 생존자인 챨튼이 헤딩골로 그들한테 리드를 주는데 성공하였다. 그대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하지만 Jaime Graca가 15분을 남겨놓고 동점골을 넣은 뒤 아우제비오가 90분이 되기 직전에 1:1 찬스를 맞이하면서 벤피카의 우승으로 끝나는듯 하였다. 하지만 아우제비오의 강슛은 Stepney의 손가락 끝에 닿았고 살짝 빗나가면서 경기는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덥고 후덥지근했던 그 날 밤, 맨유 선수들은 상당히 지쳐보였다. 하지만 Busby는 그들한테 끊임없이 용기를 주었다. "서로한테 패스만 잘 주고받으면 그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벤피카 선수들 또한 많이 지쳐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베스트의 드리블이 폭발하였고, 베스트는 수비수 2명과 골키퍼를 모두 제친뒤 여유있게 마무리하면서 결승골을 넣었다. 맨유는 그 골 이후 새로운 힘을 얻었고 19번째 생일을 맞이했던 Brian Kidd가 1골, 그리고 챨튼 선수의 골을 어시스트 해주면서 결승전은 맨유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주심은 경기를 마무리 지었고, 챨튼은 주체할 수 없이 울기 시작하였다. Busby 감독 또한 그의 팀원들과 더불어 울고 있었고 뭰헨 사고 이후에 생긴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Busby 감독은 후에 "챨튼이 유러피안 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유럽에 진출해야 한다고 고집했던 제 믿음이 보답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였어요."

그리고 밑의 영상은 1968년 당시 결승전 하이라이트입니다.
..안 뜨네요 왜 이러지.. 

그리고 4강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 하이라이트 입니다. 역시 주소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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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카큔 2011/05/25 02:07 # 답글

    이제 다시 웸블리에서 챔스컵을 들어올릴 때가 된거죠.

    지성 팍이 결승골을 넣으면 We are the world!!
  • Homme 2011/05/25 02:09 #

    ㅋㅋㅋㅋ 정말 대단할 것 같아요 아마 미래의 한국 축구 팬들은 "그날 경기 어디서 봤냐"고 물으면서 좋아할 수 있겠어요 ㅋㅋㅋㅋ
  • 농부 2011/07/20 03:38 # 답글

    잉글랜드 리그가 변방 취급당했다기 보다는 처음 나온 내용대로입니다. FA는 물론이고 다른 잉글랜드 클럽도 유러피언컵을 경시했었죠. 유나이티드 유러피언컵 우승 멤버였던 팻 크레란드도 훗날 인터뷰에서

    '우리가 유러피언컵 우승을 달성하자 FA는 협회 조항을 들먹이며 다음 리그경기가 시작되기 48시간 전까지 돌아오라고 엄포를 놓았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조지 베스트.. 저는 영상으로만 접했지만, 가장 충격적인 선수중 하나입니다. 글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벤피카의 홈 무패 신화를 박살내버린 것도 베스트였죠. 65-66 유러피언컵 8강 벤피카 원정에서 충격적인 5-1 대승을 이끌고 'El Beatle' 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에우제비우는 물론이고 벤피카는 60년대 최강팀 중 하나였는데 이상하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결정적인 두 번의 패배를 당했습니다. 심지어 포르투갈 대표팀도 잉글랜드 월드컵 준결승에서 잉글랜드에게 패했죠. 스코어는 2-0인데 두 골 모두 찰튼이 넣었습니다.
  • Homme 2011/07/20 10:32 #

    메시랑 상당히 비슷하던데요 베스트 선수 ㅎㅎ 오른발도 잘 쓰고 더 잘생겼다는 차이는 있지만... 벤피카란 팀이랑 아우제비우란 선수가 얼마나 잘했는지는 솔직히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와닿지는 않아서 아쉽네요 ㅠ

    그나저나 잉글랜드 축구협회 똥고집은 참 -_-.. 자만심 쩔죠 대륙보다 낫다는 ㅋㅋ 지금은 덜하겠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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